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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소장, <공동선> 주관 좌담회 참여… "기후위기 시대, 더 멀리 내다보는 진보정치 필요해"

우리 연구소 이현정 소장이 격월간 발간지 공동선이 '기후위기와 정치'를 주제로 주최한 좌담회에 참여했습니다. 이현정 소장이 참여한 좌담회의 내용은 <공동선> 159호와 🔗 이 링크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대화에서 나온 이현정 소장의 발언 몇 가지를 따서 공유드립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기간 근대화와 국가발전이란 단선적 목표만 추구하고 개발과 경쟁에 치중해 왔던 국가들이 ‘지구살리기’에 대한 공감에 걸맞은 현실적 정책대안을 끌어내는데 다양한 노력이 요구되었고, 그 결과 리우선언은 재앙을 막기 위한 지구촌 국가들의 단합된 의지와 협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운동이나 환경 활동가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청년생태주의자 KEY(Korean Ecological Youth)의 활동이나 ‘리우+10년’ 회의 때 얼음 펭귄 조각을 탄생시킨 최병수 작가 등의 활동이 1990년대 중후반에 있었고, 그런 면에서 당시 우리나라의 기후, 환경 운동이 많이 뒤쳐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운동을 보면,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환경운동의 성장기였고, 2000년대 초,중반 이후로 IMF 체제 등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환경운동이 침체되었다가 최근 몇 년간 다시 기후운동을 중심으로 살아나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시민사회보다도 많이 뒤쳐져 있습니다. 교토 의정서는 선진국에게만 강한 감축 의무를 부과하려고 했던 반면, 파리협정은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되었죠. 교토 의정서 체결 당시까지도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고, 감축해야 한다는 인식도 거의 없었죠. 하지만 파리협정 이후 기후변화대응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탄소감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지만 급박한 상황에 비해서 정부의 정책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다 나은 계획을 세워 작년 말에 UN에 제출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Business As Usual 기준을 실제 배출량 기준으로만 변경했을 뿐, 감축 목표는 동일한 양을 제출했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에서 “정치인들은 원래 먼 미래의 큰 목표만을 이야기 한다.”고 나옵니다. 현 정부도 2050년에 탄소 중립을 하겠다면서, 1.5도씨 보고서에서 나왔던 2030년에 45% 감축의 목표를 향해 당장 10년 이내에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임기에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2050년에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큰 목표만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의 정부가 취해왔던 태도이고, 최근에도 이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보수정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 시스템을 바꿀 의지가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녹색연합 박그림 대표의 설악산 정상을 지키는 활동 등의 급진적인 활동들도 환경운동 내에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동의 방식이나 정리 과정에 대한 이견 등 환경운동 내에도 많은 부침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특정 단체를 파트너로 삼는 등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온건파가 주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환경만을 위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지역의 어민, 주민들과 연대하는, 교차성이 강한 환경운동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런 운동들이 주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되짚어보면, 요즘 종종 들리는 “기후 문제는 환경문제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평가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환경이나 환경운동을 너무 좁게 봐왔기 때문에 나왔습니다. 환경은 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환경을 너무 한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까지의 환경운동이 가진 한계 때문에 기후는 환경뿐 아니라 경제, 사회시스템, 산업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완전히 반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후운동이 기존 환경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에는 동의합니다."

 

"새만금 투쟁이나, 4대강사업 반대운동 등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항상 천주교나 불교 등 종교인들과 신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드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4대강 사업시 두물머리 투쟁에서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천주교가 중재하여 남아있던 농민들이 나오는 과정을 보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종교의 기본적인 자세가 포용적이고 중재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는 것은 입니다. 

기후운동의 경우 개인의 실천차원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고, 산업전환 등 정부의 정책과 정치의 역할이 훨씬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각을 세워 대립하고, 대정부투쟁에 나서야하는데 중재하는 역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좀더 넓어지지 못할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고민을 교계 내부에서 하실 겁니다. 가톨릭과 불교가 한국사회 환경운동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었던 것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2008년 진보신당 창당 이후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당원이었고, 크고 작은 당직을 맡아왔던 입장에서 늘 고민되어 왔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 안에서 녹색이나 환경이 부문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녹색은 진보정당이 당연히 해야 할 다양한 여러 의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위원회, 녹색위원회 등 부문위원회로만 존재해 왔습니다. 지금 기후운동의 전면에 나서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과거에 진보정당에서 활동했습니다. 아마 사회변혁운동으로써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당과 인연이 있었을 것인데 지금은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당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환경과 녹색을 정체성으로 삼고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당을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탈성장과 대안연구소 김현우 소장이 진보신당 시절 쓴 글에 보면, “진보정당은 녹색을 참칭하기만 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환경운동이나 녹색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항상 다른 운동이나 가치보다는 항상 후순위에 있었다는 것이죠. 사람도 돈도 항상 부족한 진보정당에서 저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자 지도부가 직접 나서달라고 요청해야하는 입장에 섰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형평성을 위해 녹색위원회에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어떤 문제도 깊이 파고들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진보정당 안에서 고질적으로 있어 왔습니다. 정의당은 최근 기후위기를 보다 중요하게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안에서 보기에도 한계가 많이 느껴집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어떻게 기후위기가 가장 중요한 판단근거가 될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치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산업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동안 충분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후활동가들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지 각자 판단을 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노동운동, 여성운동, 빈민운동 등 자신의 정체성을 기후운동 이외에 두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게 나의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서 기후위기대응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힘을 보태거나 최근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기후위기대응 서울모임을 만들고 함께 서울노동자 기후행동학교를 열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정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떤 세력을 움직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기존의 정치혐오, 냉소를 벗어나 정치를 변화시키는 경로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월 16일자 언론기사를 보면 금속노조가 전 사업장에서 산업전환 협약을 체결하겠다고 하며, 노동이 만들어내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만들어내는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도 금속노조에서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이 탈원전정책을 비판했던 것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데, 정부가 두산중공업에 1조원이나 긴급지원을 했지만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후운동은 산업전환과 관련해서 회사의 경영진들과 노동자들을 분리해서 봐야합니다. 지금 법안들은 거의 기업의 경영진들에게 유리한 법안인데 기후운동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진정한 의미의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고 늦게 전환할수록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면 노조도 다 받아들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변화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가 제안한 것처럼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보장받도록 하겠다는 명확한 약속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좀 늦긴 했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에 남아있는 싸움은 기성 정치권에서는 노동자들을 결코 중요한 주체로 세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민주당도 마찬가지죠. 그런 것은 정의로운 전환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보정치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배출권거래제도 등 기존의 제도나 탄소세 등의 제도들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평가가 필요하고, 국가가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를 좀 더 급진적인 입장에서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무척이나 다이나믹합니다. 최근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선출되는 과정을 보면서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정치가 역동적인 것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변화의 과정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하는지에 있어서 기후위기 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연설은 당장 눈앞의 선거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한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는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런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도 고민입니다. 낡은 것은 사라졌지만, 아직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상태가 지금의 정치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여정을 치열하게 고민해 나가겠습니다."